국경 안보와 이민정책 시행을 총괄하는 국토안보부에 일주일째 인사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 키어스천 닐슨 장관이 대통령의 ‘트윗 해고’로 쫓겨났고, 그 이틀 전엔 이민세관국장 지명자 론 비티엘로가 갑작스런 지명 철회로 잘려 나갔으며, 월요일엔 랜돌프 앨러스 비밀경호국장이 해임되고, 화요일엔 클레어 글래디 부장관 대행이 사임형식으로 줄줄이 밀려났다…‘숙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닐슨 장관의 전격 해고는 트럼프 행정부 내의 두 가지 기류를 조명한다고 블룸버그 뉴스는 분석한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의 좌절과 분노가 폭발 지경이다. 남부국경 이민유입은 폭증하는데 장벽 건설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지지부진한 이민정책 시행으로 트럼프 취임 후 더 심해진 ‘위기’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이 닐슨이다.
둘째, 반(反)이민 강경파의 득세다. 트럼프의 초강경 국경정책에 종종 현행법 위반을 이유로 반대하는 닐슨을 “너무 약하다”며 대놓고 공격해온 백악관 내 이민강경파들이 드디어 그를 제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번 파워다툼의 최고 승자는 국토안보부 숙청을 진두지휘 중인 33세의 백악관 선임고문 스티븐 밀러다. ‘파리 목숨’ 트럼프 참모와 각료들이 ‘서바이벌 게임’ 중이라면, 2016년 대선 캠페인부터 트럼프 팀에 합류했던 밀러는 이민정책 내부 싸움에서 백전백승을 거두며 살아남은 이너서클 ‘생존자’다. “이젠 그와 싸울 사람조차 남지 않았다”고 NBC 뉴스는 지적한다.
트럼프 취임 직후 발동한 무슬림 입국금지 행정명령에서 국경의 가족분리, 합법이민자의 시민권 취득 제한, 드리머 구제 위한 민주당과 트럼프의 협상 저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트럼프 이민정책의 핵심 설계자인 밀러는 합법이건 불법이건 이민 제한을 위해 굳이 새로운 법을 통과시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기존 법만으로 목표 달성이 가능한 파워를 국토안보부가 가졌다는 것이다. 밀러의 주장에 설득 당한 트럼프와 밀러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이민 제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업무를 완수해야할 국토안보부 장관의 결단력과 추진력이다. 그래서 닐슨의 ‘약함’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목이 된 것이다.
닐슨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겠다. 비인도적이고 가혹한 트럼프 이민정책의 ‘공식적 얼굴’로 진보진영과 이민사회에서 혐오의 대상이 되어왔으니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닐슨은 트럼프를 만족시키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지만 망명제한 시도 등 현행법에 저촉되는 요구까지 순종할 수는 없었고 결국 그의 “안됩니다”는 대통령의 심기를 거슬렸다.
밀러의 방식은 다르다고 한다. 그 자신이 트럼프 못지않은 반 이민 강경파이지만 모든 이민정책이 그의 생각은 아니다. 상당부분은 트럼프 자신의 것이다. 예를 들어 국경폐쇄는 트럼프의 아이디어인데 닐슨은 심각한 부작용을 우려하며 반대했다. 그러나 밀러는 경제에 악영향을 안주면서 실행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했다. ‘노우’ 대신 해결책을 제시하며 트럼프로부터 ‘예스’라는 대답을 끌어내는 게 그의 생존비결이라고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전한다.
트럼프의 마음 읽기에도 능하다. 지난주 비티엘로 이민세관국장 지명자를 쳐내야겠다고 작심한 밀러는 대통령에게 그가 국경폐쇄를 지지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이 말에 어떻게 반응할지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한마디에 지명은 즉각 철회됐다. 얼마나 빨랐던지 국토안보부 관리들은 사무착오로 생각했고 장관은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
그야말로 ‘밀러 타임!’ – 백악관 반 이민 강경노선의 기수 ‘밀러의 전성시대’다.
밀러는 ‘반 이민’을 핵심이슈로 내건 2020년 트럼프 재선전략의 브레인이기도 하다고 NBC는 분석한다. 지지층이 한정되어있는 트럼프의 주요 재선전략은 트럼프에 동조하면서도 투표엔 참여하지 않는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최대로 반 이민정책을 표방하면서 ‘반 이민’을 국가안보 이슈로 뜨겁게 달궈야 한다. 밀러는 공화당의 ‘국경 안보’가 민주당의 ‘열린 국경’을 제압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백악관 내부에서 밀러의 존재감은 막강하다. 그러나 외부에선 최대한으로 몸을 낮춘다. 미디어에서 백악관의 ‘실세’로 부각되었던 참모들의 초라한 퇴출을 영리한 그가 잊을리 없다. 그러나 이번 ‘전격 숙청’으로 그 어느 때보다 밀러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뉴리퍼블릭은 ‘스티븐 밀러 대권(Presidency)’이란 제목으로 그의 막강한 영향력을 보도했다.
자기애 강한 트럼프에겐 별로 편치 않은 제목일 것이다. 몇달 전부터 이민정책 분야에 새로 투입된 대통령 사위 재럿 쿠슈너와의 알력도 머지않아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돌발변수가 없는 한, 최소한 내년 선거까지, 밀러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막후에서 전면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밀러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노골적 반 이민정책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의미다. 이민사회도 더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한국일보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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