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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을 넘고 허물며 100년 - Imin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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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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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을 넘고 허물며 100년

연방의사당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116대 연방의회는 여러 신기록들을 안고 출범했다. 한마디로 다양성이다. 하원 102명, 상원 25명으로 여성의원 사상 최다, 흑인 55명 히스패닉 45명 아시안 17명 등으로 소수계 사상 최다, 사상 첫 무슬림 여성의원과 아메리카원주민 여성의원들, 성소수자 사상 최다(10명) 등의 기록이다. 구성원이 다채로우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인 2세 앤디 김 하원의원은 뉴저지 최초의 아시안 연방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의사당 분위기를 가장 눈에 띄게 바꾼 것은 여성의원들이다. 남성의원들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행동, 말, 옷차림 어느 것 하나 튀면 안 된다며 조심하던 이전 세대와 달리 이번 새내기 의원들은 말도 행동도 거침이 없다. 의상 역시 그들에게는 당당한 자기표현이어서 무슬림 히잡이 등장하고 아메리카원주민 고유의상이 등장하며, 의회사상 최연소 기록을 세운 29살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테즈 등은 여성참정권 운동의 상징인 백색 의상을 입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자 여권운동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개원 연설에서 “여성 참정권 100주년을 기념하는 회기에 여성 하원의장이 되고, 여성의원 숫자가 100명을 넘어 사상 최대가 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100년 전인 1919년 연방의회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이듬해인 1920년 미전국 주의 3/4 즉 36개 주의회의 비준을 거쳐 수정헌법 19조가 제정되었다.

이로써 ‘여성참정권’ 100년이 되었다고 하지만, 여성 선각자들이 이를 목표로 투쟁한 것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였다. 여성참정권은 근 200년 투쟁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남성이 아닌 사람의 동등함, 백인중심 사회에서 백인이 아닌 사람의 동등함을 깨닫는 것 자체가 어렵고, 깨달은 후 이를 성취하는 과정은 더 더욱 험난하다. 기득권자들의 이해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선거권은 거저 주어지지 않았다. 재산, 교육, 인종, 성별 등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 미국의 역사는 이들 장벽을 하나하나 허물어내는 과정이었다.

1820년대와 30년대, 대부분의 주들은 재산과 상관없이 모든 백인남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똑같은 시민인데 왜 여성은 투표권을 갖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이 태동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당시 금과옥조였던 ‘진정한 여성’에 대해 여성들이 이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진정한’ 여성이란 신앙심 깊고 순종적인 아내이자 가정과 가족에 헌신하는 엄마, 여성은 이런 역할을 위해 존재한다고 가르쳐졌다. 우리의 현모양처 개념이다.

그리고 1840년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런던에서 열린 노예제반대 세계대회에 한 ‘운동권’ 부부가 참석했다. 뉴욕의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노예제 폐지운동에 참여하던 엘리자베스 케이디가 노예해방 운동가인 헨리 스탠튼과 결혼하고, 신혼여행 대신 런던으로 향했다.

하지만 미국 여성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그는 보기 좋게 쫓겨났다. 대회에는 남성만 참석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노예가 아니라 나 자신의 권리, 여성의 권리부터 찾는 일이 시급하다”는 판단이 생긴 계기였다. 그가 바로 수잔 B. 앤소니, 루시 스톤과 함께 1세대 여권운동을 주도한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튼이다.

여성참정권 운동은 부침을 거듭하다가 남북전쟁 직후 흑인남성의 시민자격(수정헌법 14조)과 선거권(15조)을 보장한 수정헌법 제정으로 불이 붙었다. 여성의 권리 선각자들이라고 해서 백인중심 의식의 한계를 넘지는 못했다.

“흑인남성(노예)들이 갖는 투표권을 우리(백인여성)가 못 갖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정서가 팽배했다. 여권운동 진영 대다수는 흑인투표권에 반대하고 유색인종 이민을 반대하며 “(백인)여성 표가 있어야 흑인 표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논리로 여성참정권을 주장했다. 인종차별에 기초한 성차별 반대였다.

이번 회기 연방의회, 특히 하원의원들의 각양각색의 모습은 미국사회가 인종, 성별, 종교, 성적성향 등의 장벽을 얼마나 허물어냈는지 그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방의회는 여전히 ‘백인남성 클럽’이지만 여성이 1/4 정도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발전이다. 기독교인 일색이던 연방의원들 사이에 불교 힌두교 이슬람 신자들이 두세 명씩 발을 들여놓았으니 발전이다.

소말리 출신 첫 연방의원인 라쉬다 틀라이(민, 미시건)는 “23년 전 난민으로 아버지와 함께 도착했던 워싱턴 공항에 연방의원으로 되돌아왔다”며 감격해했다. 난민이 연방의원이 될 수 있는 나라는 희망이 있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의회 구성원들의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폐쇄를 불사하며 ‘장벽’을 고집하지만 역사는 반대방향으로 흘러왔다. 사회는 장벽을 허물며, 다양성을 수용하며 발전해왔다.

<한국일보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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