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이민자를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일부 공화당 당원은 여러 사회문제와 이민자의 유입을 연관 짓는다. 하지만 데이터는 다르게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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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증가가 선거 전략에 미치는 영향
미국에서 이민자 문제가 정치의 핵심적 갈등으로 떠오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역사를 살펴보면 과거에도 이민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다양하게 불거졌다.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이민은 1880년대 시작되어 192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다 1920년대 미국 내에서 경제 불평등의 심화, 자국민 우선주의, 인종차별주의가 증가하면서 미국 의회는 남유럽과 동유럽 이민자 수를 줄이기 위해 나라별 쿼터를 지정해 이민자를 받았다. 외국인이 미국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던 비율은 1910년대 14.7%에 달하다가 1970년대가 되면 4.7%까지 떨어졌다(아래 <표 1> 참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이민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1960년대부터는 아시아와 남미 출신 이민자 수가 유럽 이민자 수보다 더 많이 늘었다. 미국으로 오는 이민자 구성이 바뀐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1965년 제정된 ‘이민과 국적법(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 of 1965)’이다. 이 법안으로 1921년에 도입한 출신 국가별 쿼터가 없어졌다. 대신 미국에 가족이 있는 경우 이민 우선권을 주는 방식으로 이민정책이 변했다. 동시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이민자를 제한하고 서유럽 이민자들에게 우선권을 주던 관행도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1910년 전체 이민자 중 2%에 불과하던 아시아 이민자의 비중이 2009년에는 28%로 늘었다. 중남미 국가들로부터 이민자 수는 같은 시기 더 큰 증가 폭을 보였다.
아시아계 미국인인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투표 행태를 보면 이민정책을 둘러싸고 왜 양당의 태도가 큰 차이를 보이는지 알 수 있다. 현재 미국에서 아시안 아메리칸은 가장 빠른 인구 성장세를 보이는 그룹이다. 가장 최근의 미국 인구통계조사에 따르면 2010년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 가운데 아시아계는 36%로 31%를 기록한 히스패닉보다 많다. 현재 미국에서 아시아계는 전체 인구의 5%를 차지하는데, 2050년이 되면 그 비율이 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캘리포니아 주는 유권자의 12%가 아시아계다. 상대적으로 고학력과 고소득, 종교와 가족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아시아계 이민자 혹은 아시안 아메리칸의 특성은 공화당 지지자들의 특성과 많은 부분 겹친다. 그래서 아시아계의 공화당 지지는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실제로 1992년 대선에서 아시안 아메리칸 유권자의 55%는 공화당을 지지했다(아래 <표 3> 참조). 20년 뒤 아시안 아메리칸 유권자들은 공화당보다 민주당을 더 지지한다. 2016년 대선에서는 아시안 아메리칸 유권자의 75%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알렉산더 쿠오 교수와 공저자들은 최근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이러한 투표 행태 변화 원인을 ‘사회적 배제와 정치적 정체성-아시안 아메리칸들의 정파성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밝혔다(<Social Exclusion and Political Identity: The Case of Asian American Partisanship>). 저자들은 논문에서 ‘공화당 정치인들이 이민자를 배척하는 정책을 지지하고 백인과 소수 인종에 대한 차이를 부각시켜 아시안 아메리칸 유권자들이 미국 사회에서 자신들이 배제당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투표 행태가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고학력·고소득과 같은 사회 경제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아시안 아메리칸 유권자들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지지를 옮겨 가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이민 문제를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정책 기조 차이는 유권자들에게 더 뚜렷이 부각되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일부 공화당 당원들이 미국 내 일자리 문제와 이민자의 유입을 연관 지으면서 트럼프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이민자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반(反)이민 정서가 퍼졌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제조업 분야 종사자들은 교육 수준이 낮은 이민자가 유입되면서 자신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더 커졌고 범죄도 늘었다고 믿고 있다.
공화당이 반이민 정책을 얼마나 고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10년 백인은 미국 전체 인구의 65%, 히스패닉은 16%, 그리고 아시아계는 5%를 차지했다. 2050년이 되면 백인의 비율은 46%로 줄어든다. 대신 히스패닉의 비율은 30%, 아시안은 8%에 이르게 된다. 백인의 비율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백인과 백인이 아닌 인종 사이 갈등을 부각시키거나 소수자를 배제하는 정책은 정치적으로도 공화당에 불리할 것이라고 데이터는 보여준다. 최근 공화당 의원들이 이민 관련 미국 법 개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이러한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미국인들은 고학력 전문직 이민자를 선호한다. 하지만 이들을 얼마만큼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민주당의 경우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인 진보적 백인 유권자와 히스패닉 유권자들을 고려할 때, 공화당이 지지하는 고소득·고학력 이민자를 우선으로 하는 이민정책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렇게 이민자를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받아들일지 미국 사회가 합의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캐나다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교육 수준이나 기술이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반면 가족 간 재결합이 개인의 경제적 활동과 동기 부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므로, 가족의 미국 정착 여부를 바탕으로 한 기존 이민정책을 고수해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글/유혜영 뉴욕 대학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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