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엄해져야 한다. 우리는 더 똑똑해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을 덜 따져야 한다. 우리는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정치적 올바름을 따진다.”
이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뉴욕 ‘트럭 돌진 테러’ 다음날, “이런 동물들(animals)에게는 현재 받고 있는 처벌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꺼낸 얘기다.
트럼프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추종자로 보이는 용의자를 ‘동물’로 지칭하며 그를 관타나모 수용소에 보내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의회에 ‘비자 추첨제’ 폐지를 즉각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
1일(현지시각)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나는 오늘 비자 추첨제를 폐지하는 절차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다양성 (비자) 추첨제. 듣기에는 근사하다. (그러나) 근사하지 않다. 좋지 않다. 좋지 않았다. 우리는 반대해왔다.”
비자 추첨제(Diversity Visa Lottery)는 1990년에 도입된 미국 영주권 발급 방식 중 하나다. 미국으로 입국하는 이민자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국가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영주권 신청을 받아 추첨으로 대상자를 선정한다. 제도의 명칭에 ‘다양성(diversity)’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다양성을 존중하는 미국 건국 정신이 담겨 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용의자 세이풀로 사이포브는 2010년 바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 입국했다. 트럼프는 사이포브가 합법적으로 영주권을 취득한 후 가족 등 모두 23명의 이민자를 미국에 데리고 왔다며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이포브와 함께 입국한 가족들도 안보 위협을 초래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트럼프는 “분명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그(용의자)가 그랬다. 그들(가족)도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트럼프는 또 “최대한 신속하게 이 연쇄 이민을 없애고 ‘메리트 기반’ (이민) 시스템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이는 이민 신청자들의 학력이나 경력, 언어구사력 등을 평가한 뒤 기준을 충족하는 이들에 한해 제한적으로 영주권을 발급하는 방식이다. 트럼프는 오래 전부터 이 제도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비자 추첨제를 중단하면 테러 위협을 낮출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비자 추첨제가 테러범들의 미국 입국을 조장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유럽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는 ‘외부에서 유입된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급진화된 테러리스트’에 의해 자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민 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것으로는 ‘급진화’와 이로 인한 테러를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국토안보부가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급진주의 테러리스트들은 급진화된 상태로 미국에 입국한 게 아니라 미국에 와서 몇 년간 거주하는 동안 급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가 바로 이같은 사례로 보인다.
양당정책센터(Bipartisan Policy Center)에서 이민정책을 담당하는 테레사 브라운은 허프포스트US에 “‘메리트 기반’ 이민 자격을 갖춘 이들이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급진화될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고 볼 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는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를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 하원 의원이던 그는 1990년 ‘비자 추첨제’가 포함된 법안을 냈으며, 이 법안은 당시 공화당 대통령 조지 부시의 서명으로 발효됐다.
이에 대해 척 슈머 상원의원은 성명을 내고 “나는 언제나,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민은 미국에 좋은 것이라고 믿는다”며 “국가적 비극을 맞이할 때면 늘 그러는 것 같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정치화하고 미국을 분열시키는 데 활용하는 대신 진짜 해결책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버락 오마마 전 대통령은 2015년 샌버나디노 테러 당시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이 싸움을 미국과 이슬람의 전쟁으로 규정함으로써 또 하나의 적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 역시 이슬람국가 같은 그룹이 원하는 바입니다. 이슬람국가는 이슬람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 미국인 무슬림들이 어쨌거나 조금 다르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제안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 길을 따라간다면, 우리는 패배할 겁니다. 그런 식의 구분, 우리 가치를 배반하는 건 이슬람국가 같은 집단의 손에 놀아나는 꼴입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허완씨가 작성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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