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신시네티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주먹을 불끈 쥐며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AP]
미국 사회에 트럼프 발 반이민, 인종 정치의 유령이 배회한다. 백인 우월주의자와 인종차별주의자들은 트럼트의 행태에 호응한다. 현재의 상태는 미국이 마치 60년대 민권운동 시절 이전으로 역행한 느낌마저 준다.
트럼프의 연이은 망동
혐오와 분열의 정치 가동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미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그들은 마약을 가져온다. 그들은 범죄를 가져온다. 그들은 강간범이다”. 이렇게 멕시칸계를 공격했다. 원래 대선 캠페인에서 이민은 경제, 외교, 낙태 등에 비해 덜 부각되던 분야였다. 트럼프는 이민 이슈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오바마가 도입한 DACA(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도 철폐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민 정책을 고리로 보수 성향의 백인 표심을 최대한 결집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반이민 공약을 착실히 이행했다. 취임하자마자 5일 만에 무슬림 국가 출신 사람들의 입국을 가로막는 행정명령을 공표했다. 이후 이른바 ‘무관용 정책’을 고수하며 이루 열거하기도 벅찬 반이민 정책 퍼레이드를 펼쳤다. 주로 서류미비 이민자들에 집중되던 탄압이 최근에는 모든 유색인을 대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네 명의 유색인 여성 하원의원들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여론조사로는 트럼프의 발언을 59%의 미국 시민이 잘못이라고 지적했지만 국정 지지율은 오히려 올랐다. 막말 파동 직후 노스캐롤라이나 그린빌에서 개최된 대선 캠페인에서 지지자들은 “그녀를 돌려보내라”라고 맞장구를 쳤다. 여기서 그녀는 최초의 여성 무슬림 연방 하원의원인 일한 오마르다. 오마르는 8세때 소말리아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동 난민이었다. 이것은 집단 광기다.
미국판 파시즘이다. 히틀러가 부활해 백악관에 똬리를 틀고 있다. 뮬러 특검으로 정치생명을 위협받은 트럼프는 내년 대선까지 바라보며 인종 정치를 가동한다. 트럼프는 재선을 위해 미국 사회에 언제나 내재되어 있던 인종 혐오와 분열의 화약고에 불을 지폈다. 더러운 책동이다.
반 이민·유색인 광풍의 폐해
퇴보하는 미국 정치·사회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이러한 장면들은 여러 사실들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선 캠페인 집회에 참석하여 적극 모습을 드러낸 지지자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마음속으로 인종차별주의를 간직하고 침묵하고 있는 미국인들이 부지기수다. 그것은 잠재된 거대 공포다. 그들은 내년 대선 투표일에 조용히 투표소에 가서 트럼프를 찍으며 대의 민주주의 하의 시민적 권리를 행사할 참이다.
뉴욕시 같은 곳에 살면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집단 난동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 심각성을 체감하기 힘들다. 그러나 뉴욕시 외곽 이를테면 롱아일랜드나 업스테이만 가도 상황은 사뭇 다르다. ‘레드 스테이트’인 중남부 주들은 말할 것도 없다.
작금의 현상은 단지 서류미비자나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시민이고 연방 하원의원인 사람도 혐오의 대상으로 흉포한 이지메를 당하는 현실이다. 당연히 한인 시민권자도 언제든 표적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태로 미국 사회가 흘러간다면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다.
무슬림이나 유색인을 상대로 혐오 범죄가 일어나는 사태가 염려된다. 미국 역사의 무수한 혐오 범죄들이 이미 증명했다. 얼마 전엔 뉴욕 퀸즈에서 힌두교 승려가 단지 승려 복장을 했다는 이유로 주민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우려를 현실로 증명한 사건이다. 수년 전엔 극우 시위대가 백주대낮에 트럼프 반대 시위자들을 향해 차량을 돌진한 선례도 있다. 그때 트럼프는 “증오와 폭력이 여러 진영에서 만연되고 있다.”라며 명백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백색 테러에 물타기를 했다.
트럼프식 반이민, 인종 정치는 미국인의 눈을 멀게 한다. 삶과 직결된 극심한 양극화와 경제 불평등, 사회안전망 붕괴 등의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트럼프의 인종 정치에 눌려 수면 위로 힘 있게 떠오르지 못하는 형국이다. 삶이 결딴난 가난한 백인들이 부자감세나 하는 억만장자 트럼프에 열광한다. 그의 인종차별 발언에 고무 받아 부화뇌동한다. 미국이 사회 위기에 당면할 때마다 유색인과 이민자를 공공의 적으로 설정하여 공격하는 나쁜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2020년 대선이 분수령
통합적인 사회 운동 필요
첫 번째 대선 캠페인에서 반이민 스탠스와 혐오 발언으로 재미를 봤던 트럼프는 막상 백악관을 접수하고는 여러 가능성을 탐색했다. 반이민 입장을 착실히 정책으로 구현하면서도 드리머 문제 해결을 언급하며 정치적 연산에 돌입했다.
그러나 국경 수비 예산을 둘러싼 민주당과의 힘겨루기, 최근의 뮬러 특검 보고서로 불거진 위기 상황 등을 거치며 반이민과 분열의 정치를 힘차게 가동한다. 선거 승리의 공식에 따라 반이민, 반유색인을 마음에 간직한 지지자들의 최대 결집을 서두르고 있다. 여기에선 특유의 트위터 정치를 이용한 막말이 전가의 보도로 동원된다.
이런 정황은 민주당 측의 지혜로운 후보 선출을 요구한다. 트럼프의 막가파식 행동에 선명한 반대 입장을 강하게 보여주며 사회·경제 공약으로 중저소득층과 젊은 층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후보가 필요하다. 지금 민주당엔 20여 명의 후보가 난립하며 일련의 후보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복수의 유력 진보 후보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인사가 최종 후보로 선출된다면 승리 전망은 대단히 어둡다.
거대 양당에 모든 정치적 열망이 수렴될 수밖에 없는 미국의 정치, 선거제도 하에서 민주당 내 개혁 세력은 지난 버니 샌더스 대선 캠페인부터 힘을 내기 시작했다. 민주당을 좀 더 진보적으로 견인하려는 움직임이 몇 번의 선거에서 일정 정도 성과를 내기도 했다. 트럼프에게 공격받은 또 다른 한 명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로 상징되는 기류다. 반면에 기존의 민주당 기축 세력은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국의 대통령이 앞장서 인종 정치를 가동하는 지금의 미국은 60년대 민권운동과 같은 사회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흑인 남성 다섯 명 중 한 명 비율로 수감되어 있거나 감옥을 경험한 실정에서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마치 과거의 인종 분리 상황처럼 고립된 쟁투를 이어가고 있다.
21세기의 미국 사회 운동은 각개 약진 중인 부문별 운동과 이민자 운동이 결합할 때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트럼프의 인종 정치를 극복하고 미국의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유력한 방법이다. 정치의 변화는 사회 운동에서 비롯된다.
글/차주범 민권센터 선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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