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전당대회가 아닌 트럼프 전당대회”라는 지적은 그나마 온건한 표현이다. 네오콘의 기수 윌리엄 크리스톨은 “더 이상 공화당이 아닌 트럼프 사교집단”이라고 극언까지 쏟아냈다.
24일 개막한 공화당 전당대회는 관례를 깨고 정강정책을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공화당은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어젠다를 계속 열렬히 지지할 것”이라는 결의안을 작성했다. 유일한 공화당 전직 대통령인 조지 W. 부시를 비롯한 당 중진들은 거의 불참한 채 아들의 걸프렌드까지 트럼프 일가가 총출동하여 줄줄이 연사로 나섰다.
금년 양당 전당대회의 키워드는 같다 : 트럼프. 지난주 민주당의 주제가 ‘트럼프 때리기’였다면 이번 주는 공화당의 ‘트럼프 띄우기’다.
진보 미디어들이 “경애하는 지도자 못지않은 충성 테스트”라고 꼬집을 만큼 다양한 찬사가 넘쳐났다. ‘서구문명의 보디가드’라는 뜻도 아리송한 찬사도 나왔고, 평소 “세상은 제로섬 전투”라며 잔인한 전술을 최선으로 강조해온 트럼프의 ‘온정과 공감능력’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국민의 대다수가 실패로 지적하는 대통령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처를 성공적이라고 채색하고, 공직자의 공무 중 정치활동을 금지한 현행법 위반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지지연설과 윤리 논란 부르는 대통령 부부의 백악관 전당대회 연설 등 이례적 전개는, 아직 재선승리의 로드맵을 확정짓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의 다급한 상황에 대한 반영일 수도 있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재선에 출마하는 현직 대통령으로는 위험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 현대정치사에서 전당대회 직전에 상대에게 1%포인트 이상 뒤졌던 현직은 3명뿐이었다. 그중 1948년의 해리 트루먼만이 승리했고 제럴드 포드와 지미 카터는 낙선했다. 트루먼의 경우 평균 지지율 50%인 조 바이든처럼 과반수이상의 지지를 받던 라이벌이 없었다고 CNN은 분석한다.
가장 최근 전국조사로 26일 나온 이코노미스트 여론조사에서의 트럼프 지지율은 41%로 바이든의 50%보다 9포인트나 낮다. 그러나 같은 날 발표된 라스무센 조사에선 45% 대 46%의 1포인트 차이로 막상막하다. 월스트릿저널 조사의 경우 경제정책에서만은 트럼프가 훨씬 우세해 바이든보다 10포인트나 높았다. 꾸준히 열광하는 핵심기반의 40% 지지율도 안정적이다.
바이든의 리드가 계속되고 있지만 역전 불가능의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다.
트럼프의 최고 국정지지율은 취임직후의 47.8%였다. 3년 반 재임 중 국정 지지율이 반대율보다 높은 적이 없었다. 바이든과 대결에서도 평균 46%를 넘어본 적이 없다. 현재는 42.5%다.
승리로 가는 수학 자체는 간단하다. 재선되기 원한다면 트럼프는 자신에게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를 늘리면 된다. 그러나 그건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다.
양당의 핵심지지층은 제각각 완강하니 무당파와 숨어있는 투표기피 유권자 중 부동표를 잡아야 한다. 약 1,400만으로 추산되는 투표 가능 부동표 중 상당수는 40세 이하 젊은층, 히스패닉 등 소수계, 저학력 노동계층으로 뉴스위크는 분석한다.
양당후보 모두에 대한 비호감이 대세인 표밭인데 2016년엔 이 표밭에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보다 20포인트 앞섰었다. 최근 NPR조사에선 바이든이 20포인트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선거가 ‘지지율 낮은 현직 대통령’을 심판하는 투표가 될 경우 트럼프는 불리하다. 자신과 바이든 중 선택하는 투표로 바꿀 필요가 있다. 바이든을 중도성향 부동층이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급진 좌파로 낙인찍으면서 자신을 경제회복 적임자로 부각시킨다면 승산이 없지 않다. 코비드19 백신 개발이라는 ‘10월의 서프라이즈’까지 연출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바이든의 미국’을 혼돈과 불안의 디스토피아로 몰아가는 ‘공포전략’은 이미 시작되었다. 전당대회 첫날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바이든과 극좌파는 표현의 자유를 뺏으려 한다. 그들의 뜻대로 된다면 ‘침묵하는 다수’는 없어지고 ‘침묵당하는 다수’가 될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자신의 집 앞을 지나가는 평화적 시위대에 장총과 권총을 겨누었다 기소되었던 백인 변호사부부도 찬조 출연해 “그들은 교외지역을 아예 없애버릴 것”이라면서 경고했다 : “당신이 어디에 살든 당신의 가족들은 급진 민주당의 미국에선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공포 조성으로 핵심기반 결집에 집중하는 캠페인 메시지는 4년 전 트럼프가 성공했던 전략이다. 당시 워싱턴의 기성세력에 맞서는 아웃사이더로 구사했던 전략을, 4년 가까이 워싱턴 최고의 권좌에 머물러온 대통령인 그가 이번에도 다시 동원하려는 것이다.
경제회복 시작, 백신 개발, 민주당 젊은 표밭의 소극적 투표참여, 현직의 강점을 십분 활용하는 트럼프의 공격적 유세 등 아직 반전의 계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7월 지지율에서 17포인트나 뒤지다가 집요한 네거티브 공포전략으로 1988년 11월 대선 승리를 거둔 조지 H.W. 부시 대통령도 9월초 노동절 무렵 전세를 역전시켰었다.
트럼프도 강력한 ‘반 트럼프’ 장벽을 넘어 2016년의 마법을 재연시킬 수 있을까. 여론조사는 이번에도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오보로 전락하게 될까. 그래서 민주당의 단합은 투표로 이어지지 못한 채 반(反)이민 ‘트럼프의 미국’은 4년 더 계속될 것인가.
<한국일보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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