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가 남부 국경에 이어 미-멕시코 북부 국경 지역에 약 1만5,000명의 군인과 국가방위군을 배치했다고 24일 밝힌 가운데, 이날 텍사스주 엘파소로 밀입국하려던 과테말라 이민자들이 멕시코 시우다드 후아레즈에서 국가방위군에 의해 체포된 모습. [AP]
“국경순찰대는 이민 아동들을 동물보다 못하게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달 중순 미국-멕시코 국경인 텍사스주 매캘런의 이민자 수용시설을 참관한 변호사 토비 질루카는 AP통신에 최근 이같이 고발했다. 그가 목격한 현실은 참혹했다. 부모와 떨어져 수용된 이민 청소년과 영유아들은 비누와 칫솔, 기저귀 등 생필품 없이 생활하는 건 물론 썩은 음식을 배급받기도 했다. 8살 남짓 아이가 갓난아이를 돌보는 일도 흔했다.
수용시설 밖은 더 위험한 지경이다. 24일 미 언론들에 따르면 전날 텍사스주 리오그란데 강 인근에서 영유아 3명을 포함한 일가족 추정 이민자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핵심 캠페인으로 강경한 반 이민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국경 지대의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이 극한에 내몰리면서 비판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달 중순 멕시코 국경과 인접한 텍사스주 매캘런과 클린트의 수용시설을 찾은 변호사들은 열악한 환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밝혔다. 이들 시설에는 이민 아동 청소년들이 부모에게 격리돼 수용 중인데, 음식과 식수가 부족한 데다 국경을 넘은 지 한 달 가까이 옷을 갈아입지 못해 악취가 진동했다는 것이다.
증언에 따르면 아이들은 흙과 오물이 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아예 입을 옷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토비 질루카는 AP에 “(내가 본) 모든 애들이 아팠다”라면서 “이들은 콧물과 토를 닦는 데 자신들의 옷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많은 아이들이 배가 고파 잠을 설치고, 독감이나 기생충 감염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규정상 이민 아동들은 원래 구금 후 72시간 내로 상황이 그나마 나은 미국 복지부(HSS) 산하 난민재정착지원센터(ORR)로 이송돼야 하나, 그간 ORR은 시설이 포화 상태란 이유로 아이들을 방치해왔다고 NYT는 꼬집었다. 보도 이후 거센 비판이 일자 이날 국경순찰대는 아동 300여명을 ORR 보호소와 엘파소 임시 천막 시설로 이송했다고 밝혔다.
이미 과포화 상태인 수용시설도 문제지만, 혹서기가 다가오면서 국경 지대에서 이민자 사망이 급증할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CNN 방송에 따르면 전날 불법 이민자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 1명과 영유아 3명이 국경 리오그란데 강 인근의 팔로마 야생 관리 구역에서 발견됐다. 당국은 탈수와 열 노출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텍사스주 남부 브라운즈빌에서도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 남성과 2세 내외 딸의 시신이 발견됐다.
세관국경보호국(CBP)에 따르면 리오그란데 강 협곡은 멕시코를 통해 온 불법 이민자 중 40%가량이 체포되는 곳으로, 최근 이곳에서 이민자 사망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일 이글패스 지역에서 부패한 시신 한 구가 발견됐고, 그 전 주에도 소녀 1명을 포함한 시신 7구가 발견됐다. 12일에는 애리조나주 루크빌에서 밀입국 한 인도 출신의 6세 여아가 폭염으로 숨진 채 발견되는 일도 있었다.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 국토안보부 등 이민 관련 당국은 의회에 45억달러(약 5조3,000억원) 규모의 긴급 지원 자금을 요청한 상황이다. 이 중 33억 달러가량이 수용시설 확충 등에 쓰일 예정인데, NYT는 오는 25일 하원의 표결을 앞두고 미국 민주당 내부에서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강경파를 중심으로 자금 지원에 동의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의 비인도적 이민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라며 반대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분노 탓에 국경 지역의 악조건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24일 멕시코 국방부가 미-멕시코 국경에 군 1만 5,000명을 배치했다고 밝히면서, 미국의 불법 이민자 단속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한국일보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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