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기치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오는 20일(현지시간)로 1년을 맞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1년 전 이날 취임연설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과 무역에 빗장을 걸고 장벽을 높이 쌓아올리겠다고 밝히는 등 전후 세계질서 재편의 분수령이 될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 원칙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무엇보다 ‘트럼프 시대’의 도래를 알린 것은 ‘반이민’ 정책이다.
이 정책이 속전속결로 펼쳐지며 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의 미국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은 불과 취임 1주일 만에 나왔다. 미 지방법원과 항소법원이 잇따라 제동을 걸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차, 3차 수정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맞섰다. 연방대법원은 최종적으로 8개국 국적자의 비자 발급을 중지하는 효력을 인정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뒤이어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추진(1월), 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DACA·다카) 제도 폐지 결정(9월), 수단·아이티·니카라과·엘살바도르 등 4개국 출신 이민자 ‘임시보호 지위'(TPS) 폐지 및 추방 결정 등 굵직굵직한 반이민 정책이 연중 쏟아졌다.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기조 속에 미국 자유무역의 양대산맥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차례로 재협상 수술대 위에 올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야심 차게 추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업무 첫날인 1월 23일 곧바로 폐기됐다. 태평양 연안의 광범위한 지역을 하나의 자유무역지대로 묶는 TPP는 역내에서 갈수록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다목적 포석이 담긴 카드였으나, 트럼프 대통령에겐 ‘오바마 지우기’ 목록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는 TPP 탈퇴가 “미국 노동자에게 좋은 일”이라고 주장했으며, 이후 일본, 싱가포르 등 개별 회원국을 상대로 미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인 양자 무역 협상 압력을 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 노선에는 동맹과 적의 구분도 없었다. 특히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된 한국에 철통 같은 안보 공약 이행을 약속하면서도 한미FTA 개정 협상과 더불어 태양광 모듈, 세탁기 등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 발령을 향한 속도를 높였다.
이처럼 그의 등장은 국제 질서 재편의 변곡점이 되고 있다.
대선 기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무용론’을 폈던 그는 취임 후 안보 진용의 ‘설득’끝에 나토 역할론을 인정했다. 대신 5월 벨기에 브뤼셀의 나토 본부 건물 준공식에 참석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 모든 회원국이 공정한 몫의 분담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나토와 유엔에 대한 미국의 분담금이 너무 많다며 대폭 삭감 계획을 발표했다.
다음날 그는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내용의 이 협정은 오바마 재임 시절인 2015년 195개국의 합의로 발효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선언에 맞서 중국은 유럽연합(EU)과 손잡고 협정 준수를 다짐하는 등 국제 위상을 다지는 계기로 활용했다.
이란의 핵협정 준수를 불인증 한다는 발표 역시 국제사회의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유엔 안보리 5개국과 독일이 2015년 어렵게 타결한 이 협정을 트럼프 대통령은 “최악의 거래”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 등 5개 당사국은 즉각 우려를 표시하고 협정 이행 의지를 확인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국제사회의 공동 관심 분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엇박자를 냈다”며 “결국 동맹국을 내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통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12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고 텔아비브에 있는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라고 국무부에 지시했다.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은 분쟁지역이다. 그의 결정은 예루살렘을 국제도시로 삼기로 한 1947년 유엔총회 결의안과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70년 가까이 이어온 미국 외교정책을 뒤집는 조치였다. 화약고인 중동에 폭탄을 던진 격으로,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끊이지 않는 유혈충돌 속에서 군사적 긴장 수위가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유엔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하는 결의안은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128개국이 찬성하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됐다. 결의안에 반대한 나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포함해 9개국에 그쳤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년 내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한반도를 긴장에 빠뜨렸다. 북한의 핵도발에 맞서 그가 내놓은 ‘화염과 분노’ ‘완전파괴’ ‘꼬마 로켓맨’ 등의 발언으로 동북아는 소용돌이쳤다.
대선 캠페인 기간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하겠다던 그는 정작 집권하자 북한에 대해 ‘최대의 압박과 제재’로만 일관하며 이렇다 할 북핵 해법은 보여주지 못했다. 다만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이뤄진 남북대화를 전폭 지지함으로써 남북대화의 동력을 북미 간 북핵대화로 살려갈 의지가 있음을 최근 확인한 상태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협약, 이란 핵협정, DACA와 함께 오바마 레거시(업적)로 불리는 이른바 ‘오바마케어'(ACA·전국민건강보험법) 폐지를 위해 1년 내내 좌충우돌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이름이 붙은 이 법률 폐지는 ‘오바마 지우기’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상원에서 4차례나 표결을 밀어붙였지만, 공화당 내 이탈표로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성적표는 저조했다. 대통령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국정운영 지지율은 이를 잘 보여준다.
작년 12월 AP통신과 여론조사기관 NORC 공동 조사에서 그는 32%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다. 이는 같은 시점의 역대 대통령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였다. 응답자 3명 중 2명(62%)은 트럼프 취임 후 미국이 더욱 분열됐다고 대답했다.
이는 임기 초반부터 트럼프 대선캠프와 러시아 간 내통 의혹,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특검 수사로 발목이 잡힌 가운데 국수주의 노선과 좌충우돌식 독단적 국정운영 스타일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트럼프노믹스의 핵심공약으로 대대적인 법인세 감세를 담은 세제개편에 성공한 것을 비롯해 그의 공약 이행 노력은 지지층으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에 따르면 갖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터넷망 중립성을 폐지하는 등 트럼프 정부는 1천579건의 규제를 철폐하거나 연기했다.
특히 미 경제 회복기와 맞물려 증시에서는 ‘트럼프 랠리’가 이어졌다. 지난 한 해 S&P 500지수는 약 20%, 다우지수는 25% 상승했다. 경제성장률 역시 2,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4%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3분기 연속 4%대 성장은 2005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는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사업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핵심 지지층이 운집한 ‘러스트 벨트'(쇠락한 옛 공업지대)에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는 것으로, 2020년 재선 프로젝트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막바지에 다다른 러시아 스캔들 수사와 11월 중간선거가 올해 국정운영의 최대 분수령으로 꼽힌다.
특히 러시아 스캔들은 로버트 뮬러 특검이 대면조사 방침을 밝힌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최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이 그의 최측근들에 대한 대면조사와 기소를 이어가며 트럼프 대통령을 옥죄고 있어 ‘러시아 내통’이나 ‘사법방해’ 등의 혐의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그 파장은 가늠하기 힘들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하는 것처럼 특검 수사를 통해 ‘러시아 스캔들’을 털어버릴 수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정국 주도권을 완전히 회복하면서 탄탄한 집권 2년 차를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연내 중국과의 무역문제를 비롯한 각종 무역협정에서 점수를 따고 북핵 해법과 이란 핵문제의 해결방안까지 마련할 수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금상첨화다.
물론 승부처는 오는 11월 435명 연방하원 전체와 연방상원 의석의 3분의 1을 새로 뽑는 중간선거다. 트럼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은 이 선거에서 상하원을 지켜낼 수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연임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게 된다.
하지만 상원을 빼앗길 경우 국정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되며 ‘탄핵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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