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를 지우고 오바마를 능가하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친이민 정책은 취임 첫날부터 야심찬 출발을 고하며 지난 몇 년 이민사회를 짓눌렀던 좌절을 희망으로 바꿔주기 시작했다. 출범 2주 만에 9건의 이민 관련 행정조치가 내려졌고 서류미비 이민자에 대한 대규모 신분합법화를 핵심으로 하는 포괄적 이민개혁안도 의회로 보내졌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지우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100일간 추방중지 행정명령은 한 주가 채 안 돼 연방법원의 잠정중단 판결로 제동이 걸렸고, 2일 서명한 3개의 행정명령도 당장 폐기가 아니다. 트럼프의 가혹한 가족격리 정책으로 인한 사태 수습과 불합리한 난민정책 및 저소득층 이민 규제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머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이 연방을 넘어 주·로컬 정부, 법원 판결까지로 연결되어 치밀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4년 재임 중 트럼프가 내린 이민 관련 행정조치가 무려 400여개에 달했으니 이를 합리적 절차 통해 무효화 시키는 것이 어려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반이민 정책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행정조치로 뿌리 내렸듯이 바이든 새 대통령의 친이민 의지가 변치 않는다면 그 뿌리는 조만간 뽑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트럼프 지우기는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전망이 불확실한 것(정확하게 표현해 전망이 어두운 것)은 갈수록 양극화 심해지는 연방의회에 달린 포괄적 이민개혁안의 입법화다. 그것은 드리머(DREAMer)로 불리는 200만 불체 자녀들을 포함한 1,100만 서류미비 이민자들의 신분합법화, 다시 말해 그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이 걸린 문제다.
바이든의 전임 3명 대통령 모두가 시도했지만 모두가 실패한 것이 포괄적 이민개혁이다.
국경지역 텍사스 주지사 출신으로 공화당 대통령으론 드물게 포괄적 이민개혁을 원했던 조지 W. 부시는 집권 1기엔 9.11 테러와 이라크전에 밀려, 집권 2기엔 지지율 하락에 발목 잡혀 어렵게 마련된 초당적 이민개혁안 성사에 실패했다.
2009년 이임 직전 부시는 만약 되돌릴 수 있다면 “2004년 재선 직후 소셜시큐리티 개혁이 아닌 이민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그 이유를 “인간이 밀수품이 될 정도로 망가진 제도는 재검사가 꼭 필요한 제도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바마가 흘려들었던 ‘충고’다.
압도적 의회 주도권을 갖고 출범했던 오바마는 금융위기 대처와 오바마케어 입법화에 전력 질주했고 이민개혁은 계속 뒤로 밀려났다. 집권 1기 하원에서 통과된 드림법안이 상원에서 무산되고 집권 2기 상원에서 통과된 초당적 이민개혁안이 공화당 주도 하원에서 무산된 후 오바마는 불체자녀들의 추방을 유예시킨 다카(DACA) 등 행정명령으로 최악의 사태를 막아야 했다.
트럼프도 장벽건설 예산을 조건으로 드리머들의 신분 합법화를 담은 이민개혁안을 추진했으나 무산되었고, 2019년 민주당 하원이 통과시킨 드림법안은 공화당 상원에서 유보되었다.
이민개혁의 험난한 여정은 바이든 시절에도 크게 달라지지 못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이민개혁안 관련해 유일하게 예측 가능한 것은 이미 양극화된 당쟁의 악화뿐이기 때문이다.
‘2021년 미국 시민법’으로 명명된 바이든 이민개혁안에 대한 상원 공화의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초당적 이민개혁안 지지자였던 척 그래슬리와 트럼프 충성파인 조시 홀리가 동시에 ‘대규모 사면’이라고 일축했으며, 불법입국을 부추겨 ”국경에서 또 다른 인도적 위기를 초래할 실패적 접근”이라고 미치 매코널 공화대표도 비난했다. 수백만명이 실직한 팬데믹 위기 중 ‘불법이민 사면’은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일각에서도 타이밍이 나쁘다고 지적한다.
과반수 찬성만으로 통과가 가능한 예산 조정권 행사라는 극약처방을 제외하면 공화당 지지 없이는 통과가 힘든 이번 개혁안 추진을 통해, 민주당을 단합시키고 공화당과 협상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 워싱턴 인사이더 바이든의 입법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대규모 개혁안을 분리해 소규모 별도법안으로 추진할 것도 고려 중이다. 바이든도, 이민운동가들도 반대하지 않는다. 초당적 지지가 높은 ‘드림법안’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딕 더빈과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이 곧 공동 발의할 예정이지만 20년 동안 상정과 무산을 되풀이 해온 드림법안 역시 통과 전망이 높은 편은 아니다.
서류미비 이민자의 신분합법화 관련 모든 법안의 입법화 현실은 전혀 장밋빛이 못 되는데도 이민사회의 기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음지에서 숨죽이며 지난 30여년 수없이 실망해온 이민자들에게 바이든이 공격적 정책 추진으로 이민 새 시대의 신호를 보내주고 있어서다.
그러나 ‘친이민’ 민주당 정부가 이민개혁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오바마 8년을 통해 체험한 이민사회는 최소한 부분적이라도 실질적 성과가 없을 경우 정치적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민주당을 향해 경고도 계속 할 것이다. 중간선거는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험난한 여정에도 바이든이 지치지 않는다면, 못지않게 야심찬 다른 주요과제에 또 밀리지 않는다면, 무엇보다 의회가 이번만은 당파적 정치계산 대신 미국의 안보와 경제 활성화에 중요한, 미국의 기본가치를 재확인하는 인도적 과제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금년은 ‘이민 개혁안 통과’라는 난제를 극복한 역사적 한 해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힌국일보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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