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와 입양 기관을 상대로 전례 없는 소송을 제기한 애덤 크랩서씨는 자신과 비슷한 안타까운 처지의 입양인들을 위해 책임 있는 이들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소송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일 크랩서씨가 서울서 가진 인터뷰 모습. [AP]
‘강제 추방’ 입양인 크랩서씨
정부·입양기관 상대로 소송
‘부모가 버렸다’ 기록 왜곡하고
자격미달 양부모에 학대당해
“추방후 모든 것 무너져 좌절”
세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지만 양부모가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아 40년간 본인도 모른 채 외국인으로 살다가 2016년 한국으로 강제 추방된 애덤 크랩서(한국명 신성혁·43)씨가 한국 정부와 한국의 입양 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크랩서씨와 그의 법률 대리인은 한국시간으로 24일 서울지방법원에 한국 정부와 입양 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를 상대로 한화 2억원(17만7000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다고 23일 밝혔다. 크랩서씨는 “매일매일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한국에서 이방인이지만 어떻게든 생존을 이어가고 또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정의의 실현이고 책임 있는 이들의 설명”이라며 “이토록 피폐해진 삶을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법률 대리인마저 이전 판례들에 비춰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은 길고 지난하며 승소해도 배상액이 크지 않은 점을 알렸지만 크랩서씨는 배상액보다 중요한 것은 책임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소장에 따르면 이번 소송은 크랩서씨가 미국에 입양된 1979년을 포함해 1970~1980년대 한국 정부와 입양 기관의 암묵적인 동의 아래 관련 기록들이 조작됐다는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당시 많은 입양아들이 부모에 의해 버림을 당했다고 천편일률적으로 기록됐는데 입양 기관은 친부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단순하게 미아인 상태라도 데려온 뒤 미국으로 입양보내기 손쉽게 하기 위해 부모로부터 버려졌다고 사실을 왜곡했다는 주장이다. 또 미국의 양부모가 한국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고도 입양이 가능하도록 한국 정부가 방조했다는 주장도 담고 있다. 이런 까닭에 자격 미달인 양부모가 입양아를 데려가 수많은 아이들이 차별과 학대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AP통신은 크랩서씨가 70~80년대 고도성장기 한국이 ‘아동 수출국’이란 오명을 안게 된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들춰내기에 나섰다며 당시 한국에서는 더 빨리, 더 많은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내기 위해 불법이 횡행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지난 60여년간 한국에서는 약 20만명의 입양아들이 해외로 보내졌고 대다수의 목적지는 미국이었다며 크랩서씨가 미시간의 첫번째 양부모에게 건네진 1979년 한해만도 미국에는 한국인 입양아가 4000명 이상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아동 수출을 비난하는 이들은 당시 한국의 군부독재 정권이 입양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은 한해 평균 2000만달러에 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소송 소식을 접한 홀트아동복지회의 김호현 회장은 “모든 입양이 적법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입양인의 시민권 취득과 관련된 책임은 양부모에게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보건복지부의 성창현 아동복지정책 과장도 “해외 한인 입양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와도 협의해 한인 입양인의 추방을 예방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의 많은 입양인들은 합법적으로 해외에서 입양돼 왔지만 양부모가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은 한 엄연히 미국 시민이 아니다. 어떤 입양인은 이런 사실을 첫 직장을 구하거나, 유권자 등록을 하거나, 여권을 만들려다가 알게 된다.
그리고 일부는 불행하게도 법 위반으로 한번도 고국이라고 생각해 보지 못한 낯선 나라로 추방될 운명에 처한 뒤에야 본인이 미국 시민이 아니란 사실을 인지하기도 한다.
연방정부는 2000년 아동시민권법(CCA)을 제정해 입양인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했지만 그 대상이 2001년 2월27일 이전에 18세가 되지 않은 이들로 제한해 1983년 2월 이전 출생자는 구제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한국에서 생모를 찾았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안타깝다는 심경을 고백한 크랩서씨는 “40년간 내가 살던 나라에서 추방 당하며 모든 것이 무너졌고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진 상태”라며 “영어도 못하는 정신과 전문의를 찾고 생모와 간혹 만나지만 좌절감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2016년 법원의 명령으로 크랩서씨가 다시 미국을 방문해 가족들과 만날 수 있기까지는 앞으로 8년이란 세월이 더 필요하다.
<한국일보 유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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